"당신은 한국인인가?"
누구라도 한국인이라면 서슴없이 한국인이라고 답변을 할 것입니다다.
그런데 다음의 질문을 받는 다면 어떨까.
"한국인, 당신은 누구인가?"
답변이 그리 쉽지만은 않을 것 같고 순간 당황스러울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너무나도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한국인’, 그 한국인으로서의 삶을 오늘도 살고 있지만 도대체 한국인은 누구이며, 어떻게 사는 것이 진정한 한국인의 길인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습니다. 심지어 학교에서조차도, 그리고 사회에 나와서도…. 그래서 각자가 생각하는 제각각의 한국인이 존재합니다.
그저 한ㆍ일 간의 축구경기를 보면서 모두가 하나 되어 우리나라 축구 대표팀이 승리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대한민국”을 외치곤 합니다. 그것으로 마치 한국인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고 스스로 위안 삼는 것입니다.
100년도 더 지난 과거에 한 인물이 있었습니다. 그에게 “당신은 한국인 입니까?”로 묻는 다면 그는 서슴없이 “대한국인”이라고 답변하였을 것입니다. 그는 바로 구국의 영웅, 안중근입니다.
여기 또 한 명의 구국의 영웅이 있었습니다. 영웅이라는 말조차 송구스럽다. 최근 영화 ‘명량’을 통해 다시 한 번 부각된 이름, 이순신 장군입니다. 이순신 장군은 위의 질문에 뭐라고 답변하셨을까? 물론 “아니오”라고 “난, 조선인이다.” 라고 하셨겠지만 ….
다시 현재로 돌아오면 오늘 눈이 많이 내렸습니다. 어쩌면 눈이 내린 것이 아니라 우리가 눈을 맞이한 것입니다. 반가운 손님을 기다리는 것은 까치만의 몫은 아닐 터 오늘도 눈을 맞이하면서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찬 눈바람이 불어오는 겨울 추위를 녹일 수 있는 그 옛날 할머니께서 계셨던 정겨운 부엌 한 가운데 피어나는 따뜻한 아궁이의 온기가 그립게 됩니다. 방안의 온기가 가득한 것의 그 출발은 아궁이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우리 네 어머니들은 그 아궁이의 불씨를 생명처럼 소중하게 여겼습니다. 활활 타오르던 불꽃도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시들시들 꺼져갑니다. 그 꺼져가는 불씨를 화로에 담아 옮겨 놓았다가 이튿날 새벽이 되면 여지없이 불꽃이 살아나 다시 활활 타오르게 됩니다. 그리고 모든 창조가 그 곳에서부터 다시 시작되는 것입니다. 생명의 불꽃이 타오르는 곳도, 불꽃이 다시 한 줌의 숯이 되는 곳도 아궁이입니다.
이러한 아궁이에는 우리 역사 속에서 이어져 왔던 핵심가치가 들어 있습니다.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만들어 주던 아궁이, 그 아궁이의 불씨가 꺼지지 않고 화로로 옮겨져 화롯불이 되고 그 화롯불을 중심으로 가족이 모이고 사람들이 모이게 됩니다. 그 화롯불에는 사랑이 무르익고 이야기가 끓어 넘치게 됩니다. 화롯불에 비춰지는 낯익은 얼굴들, 우리 기억 속 저 편에서부터 다가옵니다.
고대로부터 찾아온 우리의 또 다른 얼굴에는 우선 영국의 스톤헨지에서 발굴된 유골을 바탕으로 복원한 신석기인도 있고, 상투를 튼 고조선인도 있으며, 순장 풍습에 따라 꽃다운 나이에 순장된 가야 소녀 송현이의 모습도 보입니다.
그렇다면 한국인의 얼굴은 어떤 모습일까? 과거 - 현재 - 미래를 거슬러 가면서 각 시대별로 어떤 모습을 갖고 있었는지 기록들을 파악하면 그 표준 얼굴이 감이 잡히기 시작합니다. 우리 얼굴과 표준 얼굴과의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혹은 공통점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지 알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얼굴에는 역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로부터 얼굴은 얼이 드나드는 굴이라고 하였습니다.
대체로 한국인들은 혈통적으로 북방계와 남방계 그리고 한반도 원주민들이 골고루 섞여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고대에는 북방계가 영향력이 더 컸기 때문에 북방계가 주류를 이루었고 현대에는 남방계의 특징이 더 두드러진 것 같다고 합니다. 아마도 다문화 가정이 늘어나고 있는 것과도 연관이 있을 것입니다.
물론 생김새 등 외모도 중요 하지만 단군조선 이래로 우리 역사에서는 생김새에 연연하지 않았습니다. 나라 안의 모든 백성들은 하나였습니다. 특히 다종족 국가로 대제국을 이룬 고구려도 있었고, 해외에 수많은 담로를 두고 해상제국을 이룬 백제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다양한 인종들이 광활한 영토 내에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단군의 후예라고 하는 우리나라는 외국인들의 귀화에 관대했다고 합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귀화인의 성씨는 442개로, 중국계 83개, 일본계 139개, 필리핀계 145개 및 기타 75개로 일본계가 가장 많습니다. 한국에 외국인이 귀화하기 시작한 시기는 삼국시대 초엽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조선인으로 귀화한 최초의 서양인은 네덜란드 출신 얀 얀스 벨테브레로 그가 바로 박연입니다. 조선 인조 때 제주도에 표류했다가 인조로부터 벼슬을 하사받아 훈련도감에서 무기 제조를 담당하였습니다. 그는 죽을 때까지 조선 땅에서 조선인으로 살다가 한국에서 낳은 아들에게 가업을 물려주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완벽한 조선인의 삶을 살다가 간 것입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가야국 김수로왕의 비, 인도 아유타국 공주 허황옥이 있습니다. 서기 48년 가야에 와서 수로왕의 왕비가 됐고 아들 10명을 낳고 허씨를 물려줬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허씨의 자손들은 김해 허씨, 하양 허씨, 양천 허씨, 태인 허씨 등으로 갈라졌습니다.
현대에는 더 많은 귀화인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미국계로는 최근에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방송인이자 변호사 하일(로버트 할리)을 들 수 있는데, 그는 영도 하씨의 시조입니다. 전 한국관광공사 사장인 이참은 독일 이씨의 시조입니다. 1986년 이한우라는 이름으로 한국에 귀화했고 2001년 이참으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독일에서의 이름은 베른하르트 크반트였다고 합니다.
이쯤 되면 생김새가 좀 다르다고 해서 한국인이 아니다 라는 말은 성립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생김새가 같고 얼굴이 같다면 모두 한국인이라고 할 수 있나?
임진왜란이 끝나고 곳곳에 이순신 장군의 사당이 건립되었고 당연히 장군의 초상화가 모셔져 있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대일 항쟁기를 거치면서 통영 제승당, 여수 충민사, 아산 현충사, 여수 장군영당 등에 모셔져 있던 초상화 원본들이 하나 둘 사라져갔습니다. 그 이유는 암암리에 일제가 수탈해 간 것인데, 1943년 여수경찰서 형사부장이었고 광복 후 제주시장까지 지낸 김차봉 같은 인물은 영정 그림을 골동품점에 팔아먹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로 인해서 조선시대에 그려진 이순신 장군의 초상화는 단 한 점도 남지 않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김차봉 같은 인물은 한국인 인가? 분명 얼굴은 한국인의 얼굴을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반면 분명 네덜란드인의 얼굴을 갖고 있었던 얀 얀스 벨테브레와 같이 조선에 남아 있었던 네덜란드 출신은 둘이 더 있었습니다. 때 마침 병자호란이 일어났고 사실 남의 나라 전쟁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조선군의 일원으로 청나라 군대와 맞서 싸웠고 벨테브레(박연)를 제외한 나머지 둘은 끝내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우리 민족은 단군 이래로 홍익정신을 물려받았고 그 홍익정신은 아궁이의 불꽃이 되어 꺼질 듯 꺼질 듯 했지만 화롯불처럼 결코 꺼지지 않고 오늘날까지 이어져 홍익의 불꽃으로 타오르고 있습니다. 그러한 홍익정신이 살아 있었기에 생김새나 얼굴에 연연하지 않고 모두가 하나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뜨거운 열정과 위대한 정신을 갖고 있는 한국인, 당신은 누구인가?
아마도 안중근은 이렇게 답할 것 같습니다. “나는 너다.” “1909년 10월 26일 만주 하얼빈역에서 동양평화의 원흉 이토오 히로부미를 처단했던 안중근도 너고, 이토오 히로부미의 아들을 포함한 일본인들의 회유와 협박에 넘어가 민족을 배신했던 나의 아들, 안준생도 너다.” 이제 우리가 답할 차례이다. “안중근, 당신이 순국한 이후에 당신의 가족을 지켜주지 못했던 수많은 조선인들도 우리이고, 이순신 장군의 초상화를 지키지 못한 한국인들도 우리입니다.”
명량해전 당시 이순신 장군은 “실로 천행이었다.” 고 하셨습니다. 한국인, 수많은 인물들이 다녀갔고, 지금도 수많은 인물들이 한국인으로 살고 있으며, 앞으로 수많은 인물들이 미래의 한국인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이렇게 한국인의 길이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실로 하늘이 도왔기 때문이며, 하늘을 닮고자 했고, 스스로 하늘이고자 했던 우리 민족의 위대한 역사와 정신이 아궁이의 불씨처럼 꺼지지 않고 이어져 왔기 때문이다.”
꺼지지 않고 이어져 왔던 아궁이의 불씨가 우리의 국학이고, 화롯가에 가족들이 모여 정겨운 이야기를 나누듯 국학교육이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한국인의 길’을 생각하며 우리 역사와 문화를 통해 그것을 배우고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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