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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지희망편지

이승헌 총장님의 [사람 안에 율려가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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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이 최고의 악기>

 

단월드

 

나에게는 여러 가지 악기가 있다.

그 중에 빈 상자처럼 생긴 악기가 있는데 이름은 타포이다.

벌레 먹은 통나무에서 나는 소리에 반한 인디언들이 신성한 의식이 있을 때나

먼 거리의 의사소통 수단으로 쓰던 악기라 한다.

두드리면 깊고 울림이 큰 소리가 난다.

 

또 대나무를 쪼개어 만든 베트남 악기도 있다.

이름은 단트렁인데 소리가 맑고 청아하다.

 

북, 징, 꽹과리, 인디언 피리와 하프...

내가 연주하고 있는 이 악기들의 연주법을 나는 한 번도 배워본 적이 없다.

어떤 악기는 이름도 알지 못한다.

 

어느 날 나는 이 악기들이 내 몸과 전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평소에 내 몸을 악기라 생각하며 노래부르고 두드리곤 했는데

그런 생각으로 악기들을 연주하니 아름다운 음악이 되었다.

나는 이 악기들을 배워본 적이 없기 때문에 내 연주법이 맞는지 틀리는지조차 모른다.

그러나 신경 쓰지 않는다.

마음가는 대로 손을 놀려 두드릴 뿐이다.

내가 신경 쓰지 않으니 듣는 이들도 그저 즐거운 마음으로 듣는다.

우리 안에는 무한한 창조력과 생명력이 약동하고 있다.

나는 그것을 악기에 옮길 뿐이다.

따로 배울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것이 꽃이다>

 

단월드

 

언어를 넘어선 세계에 있는 어떤 것을 언어로 표현하는 일은 참으로 난감하다.

더구나 우리가 사용하는 대부분의 언어는 사회의 고정관념에 물들어

오염될 대로 오염된 낡고 둔한 도구이다.

 

말이나 글로 남은 진리에는 생명이 없다.

인간의 힘으로는 작은 꽃 한 송이, 흔한 돌멩이 하나도 만들어낼 수 없다.

 

진리 역시 마찬가지이다.

참다운 진리는 만들 수도 없고 가르칠 수도없다.

진리는 언어로서 전달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참다운 진리는 오로지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꽃이다"하고 보여줄 수 있을 뿐이다.

단지 존재할 뿐이다.

 

그 이상은 결코 밸울 수도 가르칠 수도 없다.

 

 

 

<게임의 규칙>

 

단월드

축구 경기를 처음 관람하는 사람이 있다.

 

그는 경기의 규칙을 전혀 모른다.

선수들과 공이 움직이는 것은 눈에 보이지만 게임의 규칙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응원가가 울려 퍼지고 땅이 뒤흔들리는 듯한 열광 속에 있다고 해도

그에게는 별다른 감흥이 없다.

 

그러나 경기의 규칙을 하나 둘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재미를 느끼다가,

세세한 규칙까지 완전히 알게 되면 경기를 진정으로 즐기고

환호하는 관중들의 물결 속에 합류하게 된다.